여주인공이 되는 법 - 책벌레 소녀의 인생을 바꾼 11명의 여성 캐릭터들
페미니즘 희곡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이라크계 유대인, 전란을 피해 모국을 떠나온 이민자 등 다채로운 이력을 지닌 서맨사 엘리스의 『여주인공이 되는 법』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서른일곱 인생을 회고하며, 이제껏 자기와 동고동락해 온 고전 속 여주인공들의 삶과 사랑, 좌절과 성공을 되짚어 본다. 그런 와중에 처음 말을 배우기 시작한 유년 시절부터 반항심으로 불타오르던 사춘기를 경유해, 첫사랑의 속앓이와 힘겨웠던 사회생활, 작가로서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동안 독서해 온 책 속의 여주인공들이 늘 자신 곁에 함께해 왔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누구나 성장해 가면서 자기만의 역할 모델, 마음속의 영웅, 위대한 주인공을 모색하고 성실하게 간직한다. 저자도 애초엔 무시무시한 전쟁을 피해 용감히 영국으로 이주해 온 할머니와 어머니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다가, 동화 속 인어 공주와 빨간 머리 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작은 아씨들에게 매료된다. 그러다가 이상적인 결혼에 성공하는 엘리자베스 베넷, 자유로운 성 경험을 누리는 『레이스』의 여주인공들에게도 빠진다. 브론테 자매와 실비아 플라스가 창조해 낸 여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재치와 기지를 지닌 셰에라자드도 피해 갈 수 없다. 서맨사 엘리스는 인생 각 시기마다 다른 조언을 들려주는 여주인공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비단 자신뿐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가 주인공으로 태어나는 게 아님을, 즉 끊임없는 고군분투 끝에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주인공이 되는 법 - 서맨사 엘리스 지음, 고정아 옮김/민음사 |
그런데 저자는 ‘여성’으로서 서른일곱 해를 살아오며 지금껏 만나 온 여주인공들이 (수적으로나 역할 면에서나) 극히 제한돼 있고, 때로는 올바르지 못한 데다 약간은 부적당한 롤 모델을 제시해 왔음을 알아채고 놀란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인데도 여성 스스로 우러러보고, 하다못해 참고할 만한 여주인공의 수는 매우 적다. 대부분의 영웅은 남성이고, 여성은 조력자이거나 위험한 모험에 뒤따르는 보상, 혹은 마녀나 부도덕한 유혹자일 뿐이다.
수많은 학교와 교육 당국에서 권장하는 숱한 고전을 들춰 봐도 여성 인물은 부수적이거나 수동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서맨사 엘리스는 일종의 투쟁으로서 고전을 다시 읽으며, 그 속의 여주인공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쟁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동안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기성 사회가 정해 놓은 대로 고전과 매체를 읽어 왔고, 여성 인물들의 인생관과 태도를 (자의든 타의든) 무분별하게 흡수해 왔다. 그러나 거기에 멈춰 서도, 만족해서도 안 된다. 저자 스스로 체험했듯, 우리가 읽고 보고 듣는 여주인공들의 말과 선택은 한 여성의 삶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따라서 본받을 수 있는 여성 캐릭터를 발굴하고,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자신의 일부로 흡수하는 과정은 모든 여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우리의 인생 경로는 사실상 아주 사소하고 섬세한 가르침에 영향을 받는다. 모든 여주인공이 행복한 결혼만을 꿈꾼다면, 그것을 읽은(혹은 읽을 수밖에 없는) 여성들 또한 자신의 본성, 의지와는 무관하게 천편일률적인 미래만을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여주인공이 되는 법』은 수십억 여성들의 존재만큼 다양한 여주인공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바로 당신이 이미 주인공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