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참 괜찮은 눈이 온다 - 한지혜 지음/교유서가 |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내가 버텨온 흔적이 있고,
기쁨이 남은 자리에는 내가 돌아보지 못한 다른 슬픔이 있다.”
우리가 지나온 골목길에 건네는 담백하고 잔잔한 위로
순간의 경험이, 체험이 삶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
지나가는 자는 머무는 자의 고충을, 행복을 절대 알 수 없다는 것
안다는 말은, 알겠다는 말은 매우 오만하고 경솔한 말이라는 것 _148∼149쪽
1998년 한 일간지의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두 권의 소설집을 발표하며 현대인의 공허한 내면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묘파해온 한지혜 작가의 첫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어느덧 21년 차 중견소설가로, 또 일간지 및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번 책에서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바라본 풍경들을 간명하고 정직한 문체로 그려낸다.
53편의 수록작은 문득 문득 어릴 적 엄마가 지어준 밥 냄새가 그리워질 만큼 친밀하고 소중한 삽화들로 가득 차 있다. ‘나의 살던 골목에는’이라는 부제처럼 작가는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맞닥뜨린 세상의 풍경을 네 개의 골목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1부 첫번째 골목은 마당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뛰어놀기 좋았고, 아무리 좁고 복잡해도 한 번도 길을 잃어본 적 없는 골목길의 추억, 식당에 딸린 단칸방에 웅크린 채 오직 책 속에서만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어린 이야기꾼의 행복과 불안, 소설가가 된 현재의 이야기들이 미묘한 대조를 이루며 전개된다.
2부 두번째 골목은 달빛에 젖은 길이다.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가계부를 찾아보며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삶을 헤아려보고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의 슬픔 또는 괴로움의 기록들이 심금을 울린다.
3부 세번째 골목은 마중 가는 길이다. 혈연의 최소단위인 가족에 초점을 맞춘다. 가족을 가족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혈연과 상관없이도 공유하는 기억을 하나둘 더해가며 함께 서사를 써내려갈 수 있는 관계라고 스스로 답한다.
4부 네번째 골목은 광장으로 가는 길이다. 생리대조차 살 수 없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아픈 현실과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차별과 혐오, 빈부격차, 성폭력 고발운동과 연대 등에 대한 고민이 담담하게 풀어져 나온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슈들에 대해 작가는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면서 마음껏 울 수 있는 사회, 우는 사람이 모두 위로받는 건강한 사회, 눈물 흘린 만큼 위로받고 아픈 만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